한동안 하루 일지가 없었던 이유
한동안 하루 일지가 없었던 이유
5월 26일 이후로 하루 일지를 작성하지 못했다. 쇄골 골절로 한 동안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 29일 목요일이었다. 회사 연구소 운동회에서 100m 달리기를 하다가, 왼쪽 허벅지에 햄스트링이 쪽에 경련이 일어나면서 넘어졌다. 당시에 느낌을 기억해보면, 누군가 내 왼쪽 허벅지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넘어지는 과정 자체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넘어져서 일어났을 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고, 옆구리와 허벅지 쪽이 흙바닥에 쓸려 피가 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까지도 크게 다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슬며시 어깨가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단순히 타박상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두시간 파스를 뿌리며 참고 있었는데 점점 이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칠 당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점심 식사 시간에 먼저 나와, 근처 작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셨는데, 팔을 들 때마다 어깨 쪽에서 뭔가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께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셨고, 찍은 후에 골절이 확인되었다.
인생 최초 골절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최대한 빠르게 큰 병원을 가야한다고 했다. 집 근처 광명성애병원이 있다고 하니, 거기로 가보라고 하셨다. 간단히 쓸린 상처에 대한 소독을 받았고, 허벅지 물리 치료도 받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준 임시 팔 고정 장치를 차고, 무작정 택시를 타고 광명성애병원으로 갔다.
이 때만 생각하면 뭔가 허탈하고 짜증나며 우울한 기분이 다시 느껴진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하고 촬영했던 엑스레이를 제출하고 진료를 받았다. 사람이 많아서 대기 시간이 길었고, 왼쪽 허벅지는 계속 아파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인고의 시간이었다. 진료는 3번 정도를 반복했다. 한 번은 단순히 어디가 아픈지 확인하는 절차였고, 다른 한 번은 담당의가 바뀌어 엑스레이를 다시 찍는 절차였으며, 또 한 번은 ct 촬영 후에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였다. 골절 상태는 확실히 ct 촬영 결과를 보니 더 명확해보였다. 마치 탄피에서 총알이 빠져나가기 직전의 모습 같았달까.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간의 틀어짐이 염려되지만, 나이가 젊으니 비수술을 권장하셨다. 대신 4주 정도는 팔을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깁스인줄 알았던) 슬링이라고 하는 팔 고정 장치를 착용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상태를 확인한 후에,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갑자기 팔을 쓸 수 없게 되니, 일상생활이 너무 불편했다. 하필 다친 게 또 오른팔 이었다. 저녁은 왼손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생각했고, 그때 피자를 시켰다. 근데 먹는 게 먹는 것이 아닌 느낌. 당장 있을 중요한 일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부모님한테 전화를 드린 일이 제일 그랬다. 정말이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주말에 바로 올라오셔서 당장 먹을 것, 필요한 것 등등을 챙겨주시고 내려가셨다. 같이 본가에 내려갈까도 고민했지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 혼자 남기로 했다. 그 이후 내 25년의 6월은 삭제되었다.
첫 주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넷플릭스나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팔을 움직일 수 없으니, 컴퓨터도 못하고 책도 못 읽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몸을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어깨가 찌릿해서 움직이는 게 두려웠다. 그나마 핸드폰은 오른손의 손가락만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첫 주가 지나고 나서는 비수술이 확정이 되었지만, 팔 고정 기간이 6주로 늘어났다. 6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 너무 절망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2~3주 차가 정신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중간에 회사 동료 몇분이 병문안을 와주셨는데, 그때는 정말 감사했다.
2~3주 차에는 중국 드라마 사마의 미완의 책사와 삼국지를 정주행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할 수 있는 컨텐츠 중 문명 6를 찾아서 플레이 했다. 자세가 되게 불편하긴 했지만, 턴제 게임이라서 어찌저찌 할 수는 있었다. 사실 해당 기간 동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신적으로 좀 무너졌어서 그런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 그리고 진통제가 섞인 약의 효과인지 모르겠는데, 잠이 너무 많이 왔다. 그래서 낮잠을 포함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은 자는 것 같았다. 밤낮도 서서히 무너졌다. 이 때 쯤에는 다 나으면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주차에 다시 한 번 병원을 가서 중간 점검을 받았다. 4주차 쯤에 슬링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엑스레이 결과 상으론 어림도 없었다. 쇄골 어긋남은 다행이 없었지만, 뼈가 붙는 물질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하셨다. 그래서 2주 더 팔을 고정하고,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때는 팔을 움직일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다행이 내 경우에는 5주가 지난 시점에 팔을 슬금슬금 움직여도 예전처럼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5주차에는 팔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집에서는 샤워 후에 살짝 길게 슬링을 풀고 있었는데, 그 때의 해방감은 정말 짜릿했다. 팔을 움직이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게 슬링을 혼자 왼손으로 풀고 다시 채우는 작업이 정말 어렵다. 내 경우에는 끈이 2개 정도 있었고, 한쪽 끈은 목에 거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시 채우는 게 좀 어려웠는데, 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서 혼자서도 할 수 있게된 상태였다. 슬링의 또 다른 문제는 점점 더러워진다는 점이 있다. 여름이라 그런지 땀도 많이 나고, 팔에 묻은 먼지나 때가 슬링에 묻어서 점점 더러워졌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계속 빨리 벗고싶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막바지에는 인터넷 방송을 주로 보았다. 롤과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 방송 위주였는데, 진짜 보면서 롤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 6주차 되는 날 공식적으로 슬링을 풀고,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 6주동안 쇄골 부위에 노란 멍자국이 계속 지속되었는데, 아픔이 줄어드는 정도에 비례해서 그 멍의 정도가 줄어들었다. 오른손의 부활이다! 그런데 엄밀하게는 아직 팔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엑스레이 상으로 여전히 겉으로 골절 자국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강한 움직은 절대로 안 되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도 안 된다. 심지어 백팩을 메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천천히 어깨를 올리는 동작을 할 순 있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 그래서 아직은 팔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컴퓨터를 할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루 일지는 계속 된다.
생각이 참 많은 한 달이었다. 하루 일지를 쓰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고,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는 하루 일지를 계속 작성할 예정이다. 특히 이직 관련한 업데이트 사항이 있다. 그저 간단히 말하자면, 2월 말부터 이직을 생각했는데 드디어 무언가 결정되었다. 초기 목표랑은 비슷하기도 하면서 다르기도 하여 솔직히 아직은 내 결정에 의심에 있는 상태이다. 대신 이직을 준비하며 느끼고 배운 것이 많다. 이직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은 다른 게시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이직을 하며 느낀 가장 중요한 부분은, 블로그 활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채용 시장에서 나를 어필하려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단순한 이력서와 경력 기술서만으로는 내 3년의 히스토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 그렇다고 알맹이 없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기술을 다루는지 등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블로그에 좀 더 자주 글을 올리고, 내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공부도 계속 된다.
갈증이 있는 부분이 있다. 오픈소스 컨트리뷰선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싶은데, 도저히 그 방법을 모르겠다. 멘토라도 찾아서 배워가면서라도 하고 싶은데, 해외 커뮤니티에 죽이되는 밥이되든 시간 투자하면서 도움을 구해봐야 하는 생각이 있다. 또한, 로우 레벨의 작고 간단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예를 들면 ( 물론 거대한 프로젝트지만 ) k9s 같이 기존의 툴에 기능을 추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2년 동안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해봤지만, 결국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 내 생각에 너무 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게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무작정 남들과 협업하려고 했던 것. 오로지 내 템포에 맞춰서 진행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GPT 한테 몇 가지 추천 받아 봤는데, tcpdump 로그 자동 분석기나 OpenStack CLI를 더 쉽게 쓰는 작은 래퍼 이런 게 있었다. 실제로 나는 tcpdump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배우면서 할 수 있는 좋은 주제 같다.